비가 내리지 않아도 부겐베리아는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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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에서는 지금 비가 내리지 않는다.


아열대 기후인 미얀마에서는 지금이 건기이기 때문에 빨갛게 익은 체리를 따서 햇볕에 말릴 수 있다. 바짝 마른 흙과 물기라곤 없어 보이는 나무들이지만 꽃은 피고 열매도 맺힌다.


농장에서는 한창 체리를 수확해서 씻고 말리고 가공하는 일을 하고 있다.


보름날이나 일요일에는 쉬는 날인데 체리를 따는 시기에는 시기를 놓치면 과숙이 되기 때문에 놀지 못하고 체리를 딴다.


커피를 심고 2,3년이면 체리를 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몰라도 어떻게 그렇게 모를 수가 있을까. 지금 생각하면 기가 차다.


10년.


커피가 나무에서 열린다는 사실은 알고 있는데 왜 2,3년이면 수확할 수 있을 거라 믿었을까.

한 사람이 믿더라도 다른 한 사람은 제동을 걸었어야 하는데 말이다.


"첫 해엔 얼마 그다음 해엔 얼마 해를 거듭할수록 점점 늘어나서 우린 부자가 되겠지?"

"어 맞아 맞아."


얼굴을 맞대고 둘만의 착각으로 10년을 걸어왔다는 것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거기에다 한국에서 돈을 보내주지 않고 농장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하우스를 지어 딸기를 키운 일은 진짜 앞선 선각자인가, 바닷물로 석유를 만들겠다는 망상인가.


한국에서 부품을 가져가서 지은 하우스가 어느 날 태풍이 불어 마스크팩 벗겨지듯 비닐이 한 번에 쏙 날아가버렸다. 그런데 요한과 나는 속이 상한 게 아니라 너무 속시원했다.


석회가 많은 미얀마의 물이 한국의 딸기 시설재배에 적합하지 않아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고 있었고 그건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다. 그만 둘 수밖에 없는 거였다.


다행인 건 인근의 한국기업이 만든 중국제 하우스는 철근까지 다 날아가버렸고 우리 농장의 메이드 인 코리아 하우스는 비닐만 날아가 버렸다는 것이다.


이제 그만 때려쳐 라는 신의 계시였다.


바짝 마른 땅위에서도 부겐베리아는 핀다.

미얀마에서는 마른 하늘에 갑자기 쏟아지는 스콜을 늘 생각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일기예보는 있지만 비구름은 갑자기 생기고 빠르게 움직여서 어느 곳에 어떻게 비가 온다는 예보는 사실 의미가 없어 보이기까지 한다.


아침에 마당에서 차를 타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으면  

갑자기 먹구름으로 뒤덮여서 직원들이 “모! 모! 사모님, 모”하고 외친다.


모란 미얀마어로 비다. 그리고선 방에 들어가 우산을 챙겨 나온다. 우산은  미얀마어로 ‘티’ 다.

“사모님 , 티! 티!”


농장에서도 갑자기 비가 쏟아지면 커피나무 사이에서 잠시 기다려야 한다.


빗줄기가 얼마나 세찬지 금방이라도 속옷까지 다 젖어버려서 다 벗지 않고서는 해결이 되지 않는다.


커피나무 아래서 그렇게 빗소리만을 들으며 서 있으면 붉은 흙길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이 금방 붉은 땅 속으로 스며들고 비가 그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강렬한 태양이 비친다.


비를 피해 숨어있던 개들과 고양이는 스멀스멀하나둘씩 나타나고 다시 사람들은 모자를 쓰고 농장으로 걸어간다.


미얀마는 4월 띤잔이 되면 우기의 시작을 알림과 동시에 해피 뉴 이어를 맞이한다.

사람들은 모두 거리에 나와 서로에게 물을 뿌리며 새해를 기쁘게 맞이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장대비가 내려도 꽃은 지지 않는다.


장대비에 적응이 되어서 그런지 화원 앞에서는 늘 화분을 밖에 두고 팔고 비가 쏟아져도 안으로 들이지 않는다.


장대비가 쏟아져도 부겐베리아는 지지 않는다.


억지로 해서 되지 않는 일이 있다. 자연의 순리대로 사람도 꽃도 그렇게 살아야 맞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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